[삼일아이닷컴 `26.05.21자]
규제는 대체로 선한 의도로 시작된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며, 공공선을 실현하겠다는 규제의 목적은 그 자체로는 늘 정당하다. 행정규제기본법 제2조는 “규제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행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규제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대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제도적 장치이다. 문제는바로 그 선한 의도가 언제든지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규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문제가 더 심해지거나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의로 만든 제도가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고, 행위자의 선택을 바꾸며,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규제는 언제나 “무언가를 막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직관에서 출발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규제의 역설이다.
규제의 역설을 보여 주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예 두 가지를 보자. 첫째는 '코브라의 역설'이다. 과거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 총독부가 인도의 늘어난 뱀 개체 수를 줄이려고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정책을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코브라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증가했다. 보상금을 노린 인도인들이 코브라를 몰래 키웠기 때문이었다. 이후 총독부가 해당 정책을 폐지하자 코브라를 키우던 사람들이 이를 내다 버리면서 제도 시행 전보다 코브라 개체 수가 오히려 늘었다.
둘째는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이야기다.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우유 가격이 오르자 정부는 값을 지정해 그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을 처벌했다. 그러자 우유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암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되었다. 정부가 낙농업자에게 우윳값이 올라가는 원인을 물었더니, 정부가 지정한 우유 가격으로는 사료 값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젖소를 사육할 수 없어 우유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올라갔다는 답을 들었다. 정부는 이번에는 사료 값까지 통제했다. 그러자 아무도 사료를 만들려 하지 않았고, 젖소는 제대로 먹지 못해 우유 생산은 더욱 줄었다. 결국 우윳값이 제도 시행 전보다 10배나 뛰었고, 빵과 치즈 가격까지 폭등했고 정권이 무너졌다. 국민을 위해 가격을 낮추려던 정책이 오히려 공급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고통 속에 밀어 넣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을 제한하면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정책 의도를 가지고, 전통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선의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무휴업일에도 전통시장 이용이 그다지 늘지 않았고, 소비는 온라인 쪽으로 빠져나갔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이용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한쪽을 막는다고 다른 쪽이 자동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 규제는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소비자 불편과 유통질서의 왜곡만 키웠고, 급기야 온 국민의 염장을 지른 '쿠팡 사태'만 가져왔다.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법은 기간제 파견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높이고 차별을 해소하려는 선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2년 사용 제한은 기업으로 하여금 정규직 전환전에 계약을 해지하고 새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 이른바 2년 쪼개기 계약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보호를 위해 만든 장치가 오히려 고용 불안을 제도화한 것이다.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법률)의 역설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학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시키겠다는 명분은 타당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오히려 강사 일자리 감소, 겸임 초빙 대우교수 등등 대학이 책임지지 않는 비전임 교원 증대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강사의 보호를 강화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고용기회가 줄어든 결과는 규제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도입하는 경우에도 설계가 얼마나 성세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규제의 목적이 올바르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결과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규제의 역설은 단순히 몇몇 사례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규제가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경향에 있다. 정부가 한 번 개입하면 시장은 그 개입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그 반작용을 본 정부는 다시 개입을 강화한다. 개입 → 왜곡 → 추가 개입 → 더 큰 왜곡이라는 악순환이 형성되면, 규제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난다. 역대 모든 정부가 규제개혁을 외쳐도 실제 현장에서는 새로운 규정과 예외, 허가, 신고, 제한이 계속 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의 개입을 철회하지 않는 한, 정부는 이미 만들어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더 넓은 규제와 더 강한 통제를 강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집값 안정을 목표로 투기과열지구 지정, 토지거래허가제, 세제 중과, 대출 규제 등이 반복되었지만, 집값은 지금까지 계속 상승하였다. 1991년 이후 35년간 무려 270회의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음에도 결과는 대체로 3개월 내지 6개월의 단기적 진정에 그치고, 장기적인 가격 안정은 달성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수요를 억제하는 규제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도, 역대 정부는 늘 가장 손쉬운 조치인 수요 억제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지만, 규제가 쌓일수록 시장은 더 경직되고, 그 경직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규제가 덧붙는다. 이것이 규제의 자기증식이다. 그나마 몇 년간이라도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 시기는 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가 아니라 공급 확대 정책을 편 시기였다. OECD는 역대 한국 정부의 부동산 수요 억제책을 두고 “경제 성장은 저해시키는 반면, 규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고액 자산가를 제외한 계층의 주택시장 진입을 제한한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조세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조세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지만, 본질적 기능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이다. 그밖에 조세는 특정경제활동의 조장 또는 억제, 부의 재분배, 경기 안정화, 자원 배분 왜곡의 교정 등 경제 사회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조세의 이런 유도적 형성적 기능에 지나치게 기대면 세법이 누더기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과도한 규제의 늪에 빠지게 되면서 시장의 활력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해치게 된다.
규제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려면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의 지배는 법이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제동을 걸고, 사전에 정해진 일반원리에 따라 국가를 묶는 원칙으로서 '정당성'에 기반을 둔다. 반면 법에 의한 지배는 국가가 법률 형식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상태로서 '합법성'에 기반을 둔다. 둘 다 법을 말하지만, 하나는 권력을 제한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다. 존 로크가 말했듯이, 어떤 법은 사람들에게 정부의 강제력이 어떻게 사용될지 예측 가능하게 해 주는 일반원리이고, 다른 법은 정부가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권한 부여의 수단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법률만능주의가 생기고, 규제는 예사로운 행정기술처럼 남발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제정된 법률이라고 해서 항상 정당한 규제는 아니다. 입법부가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규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자동적으로 확보되지는 않는다. 규제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다른 수단으로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 부작용이 더 크지는 않은지, 정책의 대상이 스스로 적응할 여지가 있는지, 이런 질문을 거듭해야 한다.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국민을 위한 행정일 수 있다.
결국 좋은 규제인지의 핵심은 선의가 아니라 결과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와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교수가 저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서 말했듯이 역사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과거의 패턴을 외면한 채 '이번만은 특별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인간의 착각과 자만을 꼬집고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자신감에 기초한 과도한 규제와 낙관이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은 거의 언제나 위험하다.
정책 담당자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확신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배우는 지혜와 겸손이다. 시장과 사회는 복잡하고,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으며,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고 규제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의료나 식품 분야의 예처럼 필요한 규제는 분명히 있다. 다만 규제는 언제나 예외적으로, 최소한으로, 그리고 철저히 검증된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규제가 공공선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성적 대응이 되는 순간,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된다. 선한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규제의 역설을 피하는 첫걸음이다.
※ 본 기고문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사)한국조세정책학회의 공식적인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