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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무자본국 경제개발계획' 성공은 기적

작성일2019-09-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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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19.09.03자>6·25전쟁 뒤에 출생한 60대는 최빈국에서 벗어난 기적적인 경제 개발을 직접 체험했다. 농어촌이 겹친 강원 묵호(지금의 동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필자의 유소년 시절은 빈곤이 일상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더니 책상은 없었고 엎드려 글쓰기를 배웠다. 6학년 어느 날 교무실 한 모퉁이 책장에서 금방 나온 시집을 발견하고 빌려서 읽었다. 강릉이 고향인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파도가 거센 동해에서는 무동력선 운항이 어렵고, 묵호에는 배를 띄울 호수나 강이 없다. 강릉 경포호수에 노 젓는 나룻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생전 처음 기차를 타고 찾아 나섰다. 강릉역에서 경포 방향으로 걸으면서도 돌아올 저녁 기차가 걱정이었다. 그날 처음 본 호수의 잔잔한 물결은 일생 잊지 못할 판타지였다. 대학입시를 위해 상경할 때도 밤차로 경북 영주까지 내려가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새벽녘에야 청량리에 도착했다. 영동·동해고속도로는 한참 후에 개통됐다.

우여곡절 끝에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부터 가난에 찌든 나라를 바꿀 경제개발계획을 집행했다. 수출이 유일한 활로임은 자명했으나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사들일 외화가 없었다. 1963년부터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1964년에는 월남 파병을 결단했다. 1965년에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해 무상자금과 차관을 받아들였다. ‘산업의 쌀’인 철(鐵)의 자급을 위해 국영기업 포항제철을 설립했다. 밤낮으로 건설 현장을 누빈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를 비롯해 소비재산업에 밝은 삼성과 럭키금성 등 민간 기업이 합세했다. 또 한 번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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