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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작성일2026-09-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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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權과正義 2026/9(통권 제540호)]

1.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논란거리 두 가지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부동산 문제다. 그 중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대부분의 학자, 전문가, 시민단체, 일반 여론은 물론이고 대통령, 법무부 장관, 일부 여당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99%의 검찰은 죄가 없고 1%의 정치 검찰이 저지른 행태라고는 하나, 국민의 눈에 비치기는 토사구팽(兔死狗烹)의 고사를 망각한 채 부귀영달을 꿈꾸며 권력의 충견(忠犬)을 자처해 온 검찰 스스로의 업보이자 자초위난(自招危難)이다. 검찰이 누굴 원망할 자격은 없으며, 안쓰러운 마음도 들지 않는다. 다만, 실종신고가 들어오면 사람을 찾아보기는커녕 바로 사망 종결처리해 버리는 목하 경찰에게 모든 수사권이 주어지면 그 피해는 돈 없고 힘 없는 서민층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터인데,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부작용의 속출이 명약관화하니 부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제도를 보완하기 바란다. 검찰 다음으로 우려되는 조직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이다. 벌써 법왜곡죄 신설(형법 개정), 대법관 증원(법원조직법 개정), 재판소원 도입(헌법재판소법 개정) 등 연속된 타격으로 사법부는 거의 그로기 상태이다. 지난 3월 12일 ‘법왜곡죄’ 시행 이후 7월 24일까지 이 혐의로 고발된 법관은 무려 529명에 달한다. 넉 달간 매일 4명꼴이다. 지난해 초 기준 전국 판사가 3,248명임을 감안하면, 판사 6명 중 1명이 재판을 잘못했다고 고발당한 셈이다. 급기야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재판과 관련해 고소·고발이나 민사 소송을 당한 법관을 지원하기 위한 ‘직무소송 지원변호사단’을 구성한다고 8월 12일 밝혔다.조만간 모든 판사가 한 번씩은 고발당할 것 같은 이 기이한 광경은 정상적인 법치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법원은 왜 이렇게 되었나? 법원도 그동안 권력의 충복(忠僕) 노릇을 해 온 대가로 이런 후과(後果)를 치르는 것일까? 그 원인의 깊은 곳에는 바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라는 구조적 병리가 자리 잡고 있다.

2. 여의도를 집어삼킨 서초동: 정치의 사법화

요즈음 우리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여의도가 아니라 서초동이 정치의 주무대라는 착각이 든다. 이념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협상과 타협, 토론으로 국정의 난제를 풀어가야 할 여야는 국회 안에서는 고함과 욕설을 질러대다가, 밖으로 나와서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모든 문제를 검찰과 법원으로 가져간다.검찰은 희한하게 정치적 사건에서 대개 집권당에 유리한 결론을 내리거나, 때로는 자신의 종전 결정을 뒤집으면서까지 야당 인사나 정치적 반대자들을 법원으로 밀어 넘긴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과 정치적 사건의 운명은 법원 판결에 전적으로 달리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하급심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 칭송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 권력에 영합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날을 세운다.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오더라도 ‘역사의 법정에서는 무죄’ 운운하며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다. 이제 재판소원까지 새로 도입되었으니 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은 더욱 일상화될 것이다.민주주의의 기본 문법은 간단하다. 논쟁은 국회에서 하고, 승부는 표로 갈라야 한다. 정책, 예산, 입법, 인사 등을 둘러싼 갈등은 협상과 타협,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권은 이런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이나 선거에서 지면 언론 플레이나 장외 선동으로 가고, 그도 안 되면 고소·고발의 장으로 넘어간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의 정치적 결정을 정책적으로 반박하는 대신 범죄로 구성하려 하고,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에 대해 형사처벌을 요구한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수사에 시달리고 감옥에 가는 후진적 행태가 반복된다. 이런 ‘정치의 사법화’가 왜 문제인가? 정치적 판단을 사법의 언어로 치환하는 순간, 논리·토론·협상·타협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치는 타협할 수 있지만 유죄와 무죄는 타협할 수 없다. 정치적 반대자를 법정에 세우는 순간, 상대방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 된다. 결과적으로 정치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셈이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의 방법을 찾는 기술이 바로 정치인데, 법원의 판결문으로 정적을 매장하려는 순간 정치는 소멸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이 선거로 위임해 준 권력을 정치권 스스로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판사의 손에 넘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판사들은 그 누구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정치의 사법화를 통해 권한만 비대해지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원치 않는 권한을 떠맡은 고통에도 시달리지만.

3.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린 사법부: 사법의 정치화

이제는 법원을 들여다 보자. 정치권이 엉망이라면 법원은 정치적 사건에서 공정하고 설득력 있는 판결을 해 왔던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보기에, 검찰만큼은 아니지만 판사의 정치 성향이나 이념에 따라 결론이 좌우되는 게 아닌가 의심되는 판결이 너무 잦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 한다. 판사는 여론의 풍향이나 정치권의 압박과 무관하게 오직 법리와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법부의 모습은 이런 이상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정치 일정에 맞춘 듯한 선고기일 조정 의혹, 같은 유형의 사건임에도 피고인의 정치적 소속에 따라 달라지는 판단의 속도와 강도, 어느 진영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득세하는 유리한 법리 해석, 이러한 양상이 반복되면 이는 개별 판사의 소신 문제를 넘어 사법부 전체의 신뢰 붕괴로 이어 진다. 대법원장·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고, 때로 재판 부의 인사나 사법행정이 정치적 지형에 따라 출렁이는 구조 속에서 법관 개개인이 정치적 진공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판결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진영 논리에 난도질당하는 여론 환경 속에서, 법관들은 권력에 유리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어느 쪽에도 완전히 미움받지 않는” 절충적 판결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법리적 확신 대신 정치적 고려를 택하는 순간, 그 판결은 이미 사법이 아니라 정치가 되고 만다.
사법의 정치화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사법부의 존립 근거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원래 승패와 진영이 충돌하는 영역이므로 그 사법화가 왜곡이라 해도 그러려니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애초에 정치와 여론으로부터 절연된 자리에서 오직 법리로만 판단하라고 만들어진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다. 그런 기관이 여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소수 자의 권리를 다수의 횡포로부터 지켜낼 장벽과 권력자를 법 앞에 평등하게 세우는 최후의 제도적 장치가 영영 사라진다.

4. 악순환의 구조 서로가 서로를 정당화하다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와 ‘사법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the judiciary).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두 개의 병리 현상이고, 사법부 위기의 본질이다. 두 단어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정치권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원으로 떠넘긴 죄가 있고, 법원은 그 짐을 받아 법과 양심이 아니라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죄를 짓고 있다.
이 두 가지 잘못은 서로를 부추기며 악순환을 형성한다. 정치권이 정치적 갈등을 법원으로 끌고 가는 이유는 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진영과 무관하게 오직 법리로만 판단한다는 자세와 국민적 신뢰가 확고했다면, 정치권도 함부로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이 진영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정치권은 법원을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압박과 여론전에 매달린다. 자기 진영에 우호적인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재판부를 강박 하고,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판부 자체를 정치적으로 공격한다. 판사 개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과거 판결 이력이 정치적 편향의 증거로 소환된다.
그 결과 정치는 협상 능력을 잃고, 사법은 독립성을 잃는다. 국민은 정치적 갈등의 최종 해결처를 국회도 광장도 아닌 법원에서 찾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법원조차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기괴한 상태에 갇히게 된다. 민감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일반 국민조차 “법리적으로 옳은가”보다 “어느 진영에 유리한가”를 먼저 따지는 모습은 이 악순환이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다.

5. 맺는 말 : 정치는 정치답게, 사법은 사법답게

해법은 원론적이지만, 지금이야말로 그 원론이 가장 절실하다. 정치권은 모든 정치적 갈등을 형사 고소·고발과 특검으로 해결하려는 관행을 스스로 끊어내야 한다. 정책 실패는 다음 선거 에서 심판받아야 하고, 정치적 반대자는 토론과 설득의 대상이지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검찰의 공백 속에서 경찰과 특검 제도의 정치적 오·남용을 막을 절차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법원은 그 반대의 방향에서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 판결의 시점과 내용이 정치 일정과 무관 하며, 법리는 누구에게나 똑같게 적용된다는 것을 판결문으로 증명해야 한다. 여론이 두려워 판단을 미루거나 비난이 두려워 어정쩡한 타협으로 도피하는 것은 법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정치인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대신 법원 뒤에 숨고, 법관은 법리적 소신을 지키는 대신 타협 뒤에 숨는다. 이 기형적인 맞물림을 끊어내지 않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둘 다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겠 다는, 가장 당연하지만 가장 어려운 결심과 실천뿐이다. 정치는 정치답게, 사법은 사법답게 말이다.

※ 본 기고문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사)한국조세정책학회의 공식적인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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