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이야기] 명의신탁 증여의제와 교각살우(矯角殺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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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15. 오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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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바야흐로 한 해의 성과를 뒤돌아보게 되는 가을걷이의 시즌이다. 매해 조세 분야의 화두는 다양하지만 명의신탁 증여의제만큼 장기간 회자되어 온 주제도 없다. 올해에는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부과제척기간을 확대하는 세법개정안이 논쟁거리다. 50억원 초과의 명의신탁은 과세관청이 안 날로부터 1년간으로 그 제척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사실상 무기한의 과세를 허용하는 개정안이다. 작년에는 수십년 만에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납세의무자를 수탁자에서 신탁자로 변경해 큰 화제가 되었다. 현재도 명의신탁 증여의제는 대폭 손질 중이다.

명의신탁 증여의제란 주식 등의 명의신탁이 행해진 경우 이를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그 입법 취지는 명의신탁을 이용한 조세회피를 효과적으로 방지해 조세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 담세력이 없는 명의 대여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므로 본래 의미의 세금이 아니라 조세회피 목적의 증여에 대한 별도의 금전적 형태의 행정벌이다.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과세요건은 명의신탁재산에 대한 명의신탁 합의의 존재라는 객관적 요건과 조세회피 목적의 존재라는 주관적 요건으로 대별된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신탁약정 자체가 무효이고 부동산실명법에 의해 규율되므로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권리이전에 등기ㆍ등록이 필요하지 않은 예금 등도 과세물건이 아니어서 실제 과세대상이 되는 명의신탁재산은 주식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신탁자가 수탁자의 명의로 주식을 취득하여 보유하다가 법인의 증자에 따라 추가 주식을 배정받기도 하고, 수탁자의 사망으로 수탁자가 변경되거나 합병으로 주식이 교체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수탁자와 주식의 변동에는 매번 명의신탁 증여의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연혁은 반세기 전인 1965년으로 소급한다. 당시 실질이 증여임에도 명의신탁으로 거짓 주장해 증여세 과세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다수 있었는데, 대법원은 명의신탁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한다는 별도의 조문 없이도 증여세 과세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그 후 법적 근거의 마련을 위해 1974년 개정 상속세법에서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명문 규정이 최초로 도입되었다. 이후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친 다음 1996년 개정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에서 증여추정으로 변경되었다가 1998년 개정 상증세법에서 다시 증여의제로 환원되었다.

명의신탁 증여의제에 대해서는 종전 학계에서 그 위헌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 주된 논거는 명의신탁 증여의제에 따른 증여세는 조세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제재로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침해이고 담세력이 없는 곳에 부과되는 교살적 조세 또는 압살적 조세라는 것이다. 또한 명의신탁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궁핍한 처지에 있는 수탁자에 대해 회피되는 조세의 크기도 고려하지 않고 그 재산가액만을 기준으로 과세되기 때문에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최고 30% 과징금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 명의신탁에 비해 그 본세와 가산세의 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해 형평성이 결여된다는 주장도 있다. 상식적으로도 공감되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대응은 다소 판이하다. 초기 대법원에서는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조세회피 목적을 폭넓게 인정해 거의 대부분 사안에서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수탁자들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위헌신청으로 그 권리구제를 시도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2004년 5인의 합헌의견과 4인의 위헌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으나 2005년에는 6대 3으로 합헌 결정이 나오면서 향후 위헌판단의 기대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 예상대로 그 후 반복적 합헌결정이 선고되었고, 근자에는 반대의견조차 찾아볼 수 없는 전원일치 합헌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그런데 2005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대법원의 변화된 움직임이 포착됐다. 대법원은 2006년 사소한 조세경감이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면 조세회피 목적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그 기준을 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다소 변동은 있었지만 대법원은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의 자본전입에 따른 무상증자로 취득한 주식, 명의신탁한 주식을 매도하고 그 대금으로 취득한 새로운 주식,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나 합병에 따라 명의수탁자가 취득한 신주는 이미 한 차례 증여의제 대상이 되어 과세되었다는 등의 이유에서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 받은 재산을 3개월 이내에 반환하는 경우나 명의수탁자 앞으로 주식이 명의개서된 이후 명의신탁자가 사망해 주식이 상속된 경우도 증여세 과세에서 제외된다고 보았다. 최초 명의신탁 후의 추가적 증여세 문제는 이제 유상증자에 참여해 인수한 신주 정도만 남은 셈이다. 과세당국에서도 이러한 추세에 부합해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납세의무자를 증여자로 변경해 학계의 중대한 위헌 지적을 반영했다. 대법원과 현재의 과세당국이 파수꾼으로서 헌법재판소의 명의신탁 증여의제에 대한 법적 통제 역할을 대신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교정적 초치에 따라 현행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위헌적 요소는 상당히 감경되었으나 그 제도가 상증세법에 존치되어 있는 이상 내재적 문제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무엇보다도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납세자에게 과세표준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다는 이유로 가산세를 부담시키는 것은 제재의 본질에 반하고 헌법상의 진술보장권과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특히 연 9.125%의 납부 지연가산세는 무기한의 부과제척기간과 결합해 본세의 서너 배를 훌쩍 넘는 가산세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심각한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신탁제도가 활성화된 미국,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신탁법제를 두고 있는 독일, 일본의 입법례에서조차 명의신탁을 증여로 의제하는 조항은 미증유(未曾有)다.

제도의 위헌성을 바로잡기 위해 조세회피 목적이 추정되는 요건 또는 그 추정이 복멸되는 요건을 법령에 직접 규정하자는 견해, 현행 명의신탁 증여의제 제도를 유지하면서 그 적용범위를 일정한 친족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 등도 경청할 만하지만 그러한 대증요법만으로는 문제 해결의 본질적 방안이 될 수 없다.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위헌성을 뿌리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차제에 상증세법에서 명의신탁 증여의제를 삭제하고 위반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부동산실명법과 유사한 단행법을 제정해 과징금 및 형사처벌 조항을 두는 것이 조세제도의 본질에 부합한다. 납세자가 증여자로 변경되어 전통적 증여세 과세 틀로부터 이탈한 현 시점이 적기일 수 있다. 조세회피를 위한 명의신탁의 비난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형사벌의 규율 영역에서 담세력과 무관한 증여세를 과세하다가 자칫 세법 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결과도 경계해야 한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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