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이야기] OECD와 국제조세 정치학

이근형 2019. 10. 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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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슈가 모든 논의를 압도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정치 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한 관심이 다들 지대하다. 정치의 영역이 광범위하지만 그 중핵적 위치에는 근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산물인 세금이 있다. 조세의 정치학은 국제조세의 분야에서도 현저하다. 오늘날 국제조세 정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선도한다. OECD는 1961년 자유경쟁 및 무역확대를 통한 세계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기존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의 18개 회원국들과 미국, 캐나다가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발족하였다. 2019년 현재 OECD는 35개의 회원국을 두고 있고, 우리나라는 1996년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바 있다. OECD에는 경제정책위원회, 무역위원회 등 20여 개의 분야별 위원회가 있는데, 조세 분야는 재정위원회(Committee on Fiscal Affairs)가 담당하고 있다.

국제조세 분야에서 OECD는 특히 모델조약으로 유명하다. 각국의 조세조약은 대부분 OECD 모델조약에 터잡고 있다. OECD는 범세계적 모델조약이 없는 상태에서 선진국 사이에서라도 조세조약의 체결을 확대하고자 1963년 모델조약을 마련했다. OECD 모델조약에는 원천지국은 자국에서 생기는 소득에 대해 과세권을 갖고, 거주지국은 자국 거주자의 전세계소득에 대해 과세권을 보유하며 이러한 과세권의 경합을 막기 위해 원천지국은 그의 과세권을 일정범위로 줄이고 거주지국은 원천지국의 과세권을 존중하면서 이중과세를 배제한다는 국제조세의 중요한 원칙이 담겨있다. 이런 명제의 정립이 없었다면 현재의 전세계적 조세조약 그물망은 구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국제교역과 투자의 저해로 세계경제는 상당히 위축되었을 것이다. 위 모델조약에 대해 UN과 미국은 서유럽의 이해관계만을 중시한다는 불만에서 독자 모델조약을 제정했으나 그 영향은 크지 못했다. UN이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만든 모델조약은 기본적으로 OECD 모델조약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도 모델조약을 만들어 고유의 조약정책을 추구했으나 조약협상 과정에서 수용이 잘 되지 않자 OECD 모델조약과 유사하게 개정했다. 이제는 개발도상국들도 옵져버로 참여하여 OECD 모델조약 작업에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상황이니 명실상부 OECD가 전세계 조세조약의 조타수인 셈이다.

OECD의 국제조세 사업은 모델조약 외에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주된 역점사업은 국제적 조세회피에 대한 대책이다. 이를 위해 OECD는 각 회원국들에게 국내세법의 개정작업을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 OECD의 그간의 주요 정책은 크게 3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이전가격세제의 정비’이다. OECD는 특수관계자간 거래를 통한 조세회피의 방지를 위해 1979년 ‘이전가격과 다국적 기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전가격세제는 특수관계자들 간의 거래에 대해 독립거래원칙을 적용하여 그에 따라 결정되는 정상가격을 기초로 과세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에 미국은 독립거래원칙이 자국 이익에 반한다는 판단에서 연구개발이 수반되는 무체재산의 초과이윤은 연구개발이 행해진 국가에서 과세해야 한다는 슈퍼로얄티 조항의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자 유럽은 반발했고 미국과 힘겨루기 끝에 OECD는 1995년 위 보고서를 개정해 ‘다국적 기업과 과세관청을 위한 이전가격지침’을 확정했다. 전통적 독립거래원칙을 고수했지만 그 원칙을 넓게 풀이하여 이익분할법 등 비전통적 방법도 보충적으로 인정한 타협책이었다. 우리나라는 OECD의 정책을 수용하여 1988년 법인세법에 이전가격세제를 도입했고, 1995년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국조법’)을 제정하면서 위 지침을 반영, 이전가격세제를 정비해 오고 있다.

둘째는 ‘유해조세경쟁의 억제’이다. 버뮤다, 케이만 군도와 같은 조세피난처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외자유치를 위해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출혈적 경쟁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1998년 OECD는 ‘유해조세경쟁 억제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정식으로 채택했고, 그 때부터 47개 잠재적 조세피난처를 선정?조사하여 2000년 35개의 조세피난처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각 회원국들의 조세감면제도를 평가하여 47개 제도를 잠재적 유해제도로 판정하여 개정을 권고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국가의 사정에 따라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회원국들도 있었으니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이 주요 반대국이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하면서 1995년 국조법에 조세피난처 대책세제를 도입하여 OECD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셋째는 근자의 주력사업인 ‘세원잠식과 소득이전(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BEPS)에 대한 대응’이다. BEPS는 국가 간의 상이한 조세제도 등을 이용한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또는 조세절감행위를 말한다. BEPS 현상은 초기부터 국제거래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나 자유무역의 확산 및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그 규모가 날로 커지게 되었다. 2012년 멕시코 로스카보스 G20 정상회담에서는 BEPS 방지의 필요성이 명확하게 언급되었고, 국제과세기준의 강화를 위한 OECD의 역할이 촉구되었다. 2013년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OECD로 하여금 BEPS에 대응하는 포괄적인 실행계획을 제출할 것이 요청되었다. 이에 그 실행계획이 담긴 최종보고서가 2015년 OECD에 의해 발표되었고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서 채택되었다.

OECD의 BEPS 15개 실행계획은 그 이행수준에 관하여 의무적 성격의 최소기준과제와 권고적 성격의 공통접근과제, 모범권고과제로 분류된다. 최소기준 과제로는 조약남용 방지방안, 국가별 보고서 도입 등이 있고, 공통접근과제로는 이자비용 공제제한 등이, 모범권고과제로는 조세피난처 대책세제 강화 등이 있다. 우리나라도 BEPS 실행계획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세제를 개편하고 있다. 국가별보고서 도입, 이자비용 공제제한 등이 그 일환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서유럽국가들이 적극적인데, 프랑스의 조세회피 방지규정 및 이자비용 공제제한규정이 대표적이다. 반면 미국은 국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조약남용 방지방안 이외에는 소극적이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도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형국이다.

BEPS 실행계획의 도입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식의 찬반논쟁이 있으나, 글로벌 스탠다드의 도입은 불명확한 국제조세환경을 제거하는 유익한 측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차제에 다국적기업의 과세 등에 대한 중립적 국제조세 과세체계를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종전 OECD의 이전가격세제의 정비 등 중점사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제도라고 하더라도 개별 회원국들은 각기의 사정과 국익을 고려하여 도입 여부와 강약을 조절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BEPS 실행계획은 그 자체에서 최소기준, 공통접근, 모범권고로 이행수준에 차등을 두고 있어, 세부 실행계획이 우리 경제와 세수에 미칠 영향을 더욱 신중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OECD의 조세정책은 복잡한 국제정치의 산물이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이러한 국제정치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일념통천(一念通天)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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