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무자본국 경제개발계획' 성공은 기적
6·25전쟁 뒤에 출생한 60대는 최빈국에서 벗어난 기적적인 경제 개발을 직접 체험했다. 농어촌이 겹친 강원 묵호(지금의 동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필자의 유소년 시절은 빈곤이 일상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더니 책상은 없었고 엎드려 글쓰기를 배웠다. 6학년 어느 날 교무실 한 모퉁이 책장에서 금방 나온 시집을 발견하고 빌려서 읽었다. 강릉이 고향인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파도가 거센 동해에서는 무동력선 운항이 어렵고, 묵호에는 배를 띄울 호수나 강이 없다. 강릉 경포호수에 노 젓는 나룻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생전 처음 기차를 타고 찾아 나섰다. 강릉역에서 경포 방향으로 걸으면서도 돌아올 저녁 기차가 걱정이었다. 그날 처음 본 호수의 잔잔한 물결은 일생 잊지 못할 판타지였다. 대학입시를 위해 상경할 때도 밤차로 경북 영주까지 내려가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새벽녘에야 청량리에 도착했다. 영동·동해고속도로는 한참 후에 개통됐다.

우여곡절 끝에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부터 가난에 찌든 나라를 바꿀 경제개발계획을 집행했다. 수출이 유일한 활로임은 자명했으나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사들일 외화가 없었다. 1963년부터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1964년에는 월남 파병을 결단했다. 1965년에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해 무상자금과 차관을 받아들였다. ‘산업의 쌀’인 철(鐵)의 자급을 위해 국영기업 포항제철을 설립했다. 밤낮으로 건설 현장을 누빈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를 비롯해 소비재산업에 밝은 삼성과 럭키금성 등 민간 기업이 합세했다. 또 한 번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다.

실물경제 성장이 자금 흐름보다 빠른 상황이라 은행 돈을 노린 정경유착이 극심했다. 자산과 이익을 부풀리는 회계 부정이 판쳤고 은행 부실채권도 급증했다. 반도체 특수가 몰고 온 외화흑자에 도취된 김영삼 정부가 채권시장 개방 등 무분별한 ‘세계화’를 밀어붙이다가 외화 부도에 직면했다. 부도덕의 대명사인 한보와 주인 없는 무책임 집단 기아의 도산을 시발점으로 금융 부실이 더욱 확산되자 경제주권을 국제통화기금(IMF)에 넘기는 비상조치가 단행됐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실업자가 양산되면서 기업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됐고 대기업 출자규제가 힘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에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수용했다. 경영권 위협에 직면한 대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자기주식 매집에 돈을 퍼붓는 축소 경영으로 대처했다. 이 와중에 청년실업은 더욱 악화됐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구호는 세법 구조를 흔들어 세금을 더 걷겠다는 암수였다. 모든 국가에서 인정하는 이월결손금 공제를 연간 60%로 제한하는 ‘꼼수 규정’이 신설됐는데, 이 때문에 공기업인 코레일이 분식회계 혐의를 덮어쓰게 됐다. 국제회계기준이 이익으로 인정하는 토지재평가차익에 대해 이월결손금공제 한도 60%를 적용해야 한다는 감사원 지적이다. 법인세 회계는 세무전략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며 같은 단지에 있는 토지라도 연말 전후로 나눠 2개 연도에 걸쳐 분할매각하면 모두 공제받을 수 있다. 가혹한 세법 때문에 한국 대표 공기업이 분식회계로 몰리면서 저평가된 회계 투명성은 더욱 추락할 위기다.

과세기준가액은 올리고 신고세액공제는 낮춤으로써 상속증여세 부담은 급증했다. 고령의 기업주들이 사업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더 거둔 세금을 복지 확대와 특정사업 재정 지원에 투입하겠다고 홍보한다. 직장을 못 잡은 청년에게는 돈 몇 푼보다는 평생 활용할 기술 습득이 더 요긴하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자유무역 기조에 반하는 특정산업 지원을 떠벌리면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통상 마찰의 빌미가 될 위험이 크다. 세금과 규제를 대폭 줄이고 기업가 투자 의욕을 북돋아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 당장 내년 세법 개정에서 관련 유인책이 시급히 마련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