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성의 Tax Issue] 주세(酒稅)개편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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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세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그 발단은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 확대로 국산맥주가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애주가들은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비하여 가격과 품질을 함께 고려하는 소위 가성비(價性比)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2012년에 4%였던 것이 작년에 20%로 급성장하였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이번 달 초에 주세개편에 관한 정부의 용역결과를 발표하면서 세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첫 번째 방안은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하고, 나머지 주종(酒種)은 연차별 일정을 세워서 중기적으로 전 주종을 종량세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안은 맥주와 더불어 탁주(막걸리)도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세 번째 방안은 전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되, 맥주와 탁주 외의 주종은 일정기간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세의 과세표준은 지난 50여 년간 주정(酒精)을 제외하고 종가세(從價稅)체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주세개편은 술의 양이나 도수(度數)에 비례하는 종량세(從量稅)체계로의 개정내용을 담고 있다.

술에 부과하는 세금은 죄악세(罪惡稅)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술의 양이나 도수를 고려하여 과세하는 종량세가 술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비례하고 사회적비용의 적정부담이라는 생각 때문에 종량세의 과세체계가 합리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세개편방향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3가지 안을 보면서 주세개편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해본다.

첫째는 주세개편의 발단이 수입맥주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세의 과세표준은 주세법 제21조 제2항에 의하여 국산맥주의 경우 출고하는 때의 가격, 수입맥주의 경우는 수입신고를 하는 때의 가격이 된다.

국산맥주의 출고하는 때의 가격(A)은 생산 비용에 판매관리비와 적정 이윤을 포함한 반면, 수입맥주의 수입신고를 하는 때의 가격(B)은 수입신고가(輸入申告價)에 관세를 포함한 가격이므로 일반적으로 B가 A보다 낮다.

현재의 종가세 체계에서는 가격에 대하여 과세하는 구조이므로 낮은 수입맥주의 가격은 높은 국산맥주의 가격에 비하여 주세부담측면에서 유리하게 되고 이는 국산맥주의 시장경쟁력을 저하 시킬 수 있다.

이점은 조세재정연구원이 제시한 3가지 안 모두 종량세시행의 우선대상으로 맥주를 거론하였고 주세개편의 배경으로 수입맥주의 시장 점유율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량세로의 주세법 개정이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에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수입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는 가격뿐만 아니라 그 품질에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둘째,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개편은 근본적으로 고도수, 고세율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고 이러한 원칙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낮은 술에 비하여 건강에 상대적으로 더 해롭고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 비용을 더 많이 발생시키므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맥주와 탁주를 제외한 소주 등에 대하여 종량세 대상에서 제외 한 것은 고도수, 고세율의 원칙에도 맞지 않아 마치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주세개편으로만 보인다는 것이 이번 개편의 부담이다.

셋째, 조세는 그 세금을 부담하는 자의 각 개별상황을 고려하여 모두를 만족시키는 구조를 가질 수 없다.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적합한 방향의 제시가 중요하다.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개정은 주세에 관한한 고도수, 고세율의 원칙, 사회적 비용의 적정부담이라는 죄악세 본질의 문제에 적합하다는 생각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맥주와 탁주에 대하여는 종량세를 적용하고, 기타주에 대하여는 종량세를 일정기간 연기하는 정책의 선택은 수입맥주에 대한 시장점유율의 저지, 서민술인 소주에 대하여는 종가세를 유지함으로써 서민증세의 비난을 피하려는 정책적 판단으로 정책입안자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지언정 원칙적인 종량세의 방향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세정책의 입안에 있어서 이런 식의 눈치 보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만약 주세의 개편방향이 합리적인 이유로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정해졌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맥주사업자도 만족시키고 소주사업자 및 서민을 만족시키는 주세법 개정은 원칙이 없는 세법개정이 되고 주세개편의 딜레마에서 오는 입법자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함으로 보여 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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