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이야기] 무술년 '스포츠의 해'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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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08. 오후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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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어느덧 무술년(戊戌年) 한 해도 종점으로 치닫고 있다. 88서울올림픽 30주년이 되는 올해는 가히 '스포츠의 해'라고 할 만큼 기념비적인 스포츠 행사들로 풍성했다. 그중에서도 '팀 킴'이 컬링 신드롬을 일으킨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으뜸이다. 평창올림픽의 '드론 쇼'로 대표되는 개막식은 우리나라의 선진 IT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간 서울ㆍ부산ㆍ인천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도 이번 여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개최돼 적도의 스포츠 열기를 한껏 전해줬다. 개별 종목의 국제대회로는 초여름 한 달 동안 대한민국 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한 러시아월드컵을 빼놓을 수 없다. 가을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비견되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창원 도심에서 시민들의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국가 대항전인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는 한국 여자골프팀이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실로 '무술년(武術年)'다운 한 해였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러시아에 이어 6번째로 하계와 동계 올림픽, 월드컵 및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4대 메가 스포츠 대회를 모두 개최한 '스포츠 강국'이다. 국제 스포츠 행사의 개최는 우리나라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고용 유발 및 일자리 창출에도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되는데, 평창올림픽은 약 6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포츠 행사를 통해 국가 간의 교류도 활성화되고 그 유치 지역은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영국의 셰필드 지역은 경기 침체로 도시가 쇠퇴하다 1991년 세계학생경기대회의 성공적 유치와 더불어 영국의 국가스포츠도시로 지정된 이후 도시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기실 하나의 국제 스포츠 대회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관객, 조직위원회, 참가 선수, 방송사 등 수많은 다국적 당사자가 관여한다. 성공적인 스포츠 대회 개최를 위해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경제 주체를 끌어들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세금'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는 경우 각종 조세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 없이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의 조세특례제한법, 국제경기대회지원법도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를 위한 다양한 세제상 혜택을 마련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의 예를 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각국 올림픽위원회, 방송 제작사 및 후원 기업들은 평창올림픽에서 발생한 수입에 대해 법인세 부과를 면제받았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나 코치진 등이 대회 참가나 운영과 관련해 얻은 수입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경기에 사용되기 위한 물품으로 국내 제작이 곤란한 재화 등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가 각각 면제됐다. 인지세 면제 및 관세 경감의 혜택이 주어진 것은 물론이다. 다만 국제경기대회지원법은 각종 특례를 적용받는 국제대회를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UL 인터내셔널 크라운과 같은 국제대회도 그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세제상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해봄 직하다.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프 나이 교수가 강조한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한편 스포츠 대회와 스포츠 선수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바늘과 실'의 관계다. 스포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우리나라의 소프트 파워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김연아, 박세리, 박인비, 박지성, 박찬호, 손흥민, 이승엽, 최경주 같은 유수의 스포츠 스타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해 활약해줘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스타의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의 국적을 보유하지 않아도 되므로 세금의 영향은 크다. 통상 '거주자'는 전 세계 소득에 대해 납세 의무를 지고 '비거주자'는 소득이 생긴 국가에 세금을 내면 된다. 어느 국가의 거주자인지에 따라 세금 부담이 달라지고 국가마다 거주자 판단 기준에 차이가 있어 거주지국, 나아가 국적의 선택은 특히 국제적 활동이 빈번한 스포츠 스타들에겐 심각한 현실 문제다.

2003년부터 8년간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맹활약한 이승엽 선수는 국내 복귀 이후 일본에서 번 소득에 대해 우리나라에 납부한 소득세의 감액경정청구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예가 있다. 이승엽 선수가 연간 300일 가까운 기간을 일본에 체류했음에도 우리나라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거주자로 인정돼서다. 우리나라는 체류일 수에 따라 판단하는 '거소 기준'과 국적, 가족이나 재산 등 제반 생활 관계에 따라 판단하는 '주소 기준'을 적용해 거주자 여부를 판단한다. 주소 기준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스포츠 스타가 일 년 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체류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거주자'로 인정될 수 있다. 우수한 외국 인력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마당에 우리의 세제가 되려 스포츠 인재들을 유출하는 이유가 된다면 매우 곤란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가는 조세 제도도 훌륭한 인재로서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스포츠 스타들이 우리 국적을 가지고 전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불법적인 조세 회피를 방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모호한 규정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불필요한 조세순응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다. 다양한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와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스포츠 선수들의 해외에서의 활약은 우리나라의 소프트 파워를 견인하는 쌍두마차다. 스포츠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합리적인 조세 제도가 이 쌍두마차를 잘 이끌어나가는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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